김 석 모 철학박사 ·미술사학자
고대로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해 자연과의 숙명적 대결을 벌여왔다. 최초의 인류에게 자연은 위협적인 공포의 대상 이였다. 서양의 고대인들은 대자연이 휘두르는 폭력을 신화라는 장치를 통해 구체화했다. 의인화되고 상징화된 자연현상들은 그들의 관념 속에 갇혀 통제 가능한 대상이 되었고, 이를 통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인류는 자연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었다. 자연이 통제와 예측 가능한 것이 되면서, 인간은 그것을 유희와 관조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우거진 녹음에서 평안과 쉼을 줄 수 있는 것도, 화산폭발이 위협이 아니라 장업한 광경으로 다가오는 것도, 집체 같은 파도의 사나운 포효가 숭고미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자연을 통제 할 수 있다는 인간의 자만에 찬 믿음에 기인한다. 그런데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우위를 점해온 수세기 동안 지속적인 파괴가 자행되었다. 자연을 무분별하게 착취하여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사이 공기는 오염되었고, 강과 바다는 썩어갔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공포스러운 자연의 모습은 지워진지 오래고, 오히려 태고의 자연에 대한 막연한 낭만적 회귀를 꿈꾼다.
작가 정지현이 선보이고 있는 아홉 점의 회화작업은 모두 물과 숲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그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녹색의 이미지>라는 상위개면으로 수렴된다. 사회적 통념 속에서 녹색은 푸르고 평화로운 자연과 연상 작용을 일으켜 평화 혹은 안전을 상징한다. 하지만 정지현은 그의 회화 속 ‘녹색’을 통해 통제되고 재단된 자연의 흔적들을 서술하고 있다. 인간의 손이 닿아 제대로 흐르지 못한 물의 힘겨운 숨소리, 가뭄으로 갈라진 논의 표현에 엉켜 붙어 심지어 혐오스럽기까지 한 녹조의 찌꺼기들, 나무의 높이를 키우기 위해 그것이 마치 건축물인 냥 비계에 가두어 가해지는 인위적인 조작들, 이처럼 녹색에 대한 정지현의 색체도상학적 해석은 파괴 그리고 죽음의 흔적이다.
정지현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재료적 특징은 이들이 예외없이 모두 한지위에 목탄 혹은 콩테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건식재료의 선택은 작가가 한국화를 전공했다는 사실과는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다른 재료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표현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목탄과 콩테를 고집하는 이유를 작가 스스로는 개인적 ‘취향’ 과 ‘성향’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의 관계 속에서 하나의 공통된 맥을 형성하고 있다. 나무를 태워 만든 목탄이나 광물의 미세한 가루를 점토와 섞어 반죽해 구운 콩테나 모두 자연적 상태와 가장 근접한 형태로 만들어진 재료이며, 이들은 안료를 희석해 사용하는 재료들보다 그 성질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화면이라는 축소된 ‘우주’위에 자연의 한 토막인 재료를 통제하고 예측하면서 이루어지는 작업의 과정은 인류와 자연이 맺어온 치열한 역사의 재현이다.